The Journey of Namingle

처음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마, 아빠 곁을 떠나 18살의 어린 나이로 혼자 타는 비행기였어요.

외항사 비행기 안, 주변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모두 낯설기만 했고
벌써부터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승무원이 제게 말을 걸었어요.

“Do you need any drinks?”

그 짧고 간단한 한 문장조차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어도 못하는 내가 낯선 나라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괜한 희망을 품고 온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에 도착하고 일주일 쯤 지났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한 백인 할아버지께서
저를 보며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It’s ……g to death, isn’t …..?”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저는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죠.

할아버지는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인자하게 또박 또박 웃으시며 다시 말씀하셨어요.

“Bundle up more, sweetheart.”

그때는 스펠링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휴대폰 메모장에 들리는 발음 그대로 적어두었답니다. 

“번들럽 모어”

그리고 며칠 뒤,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Freezing to death : 죽을 만큼 추워

Bundle up more : 더 따뜻하게 껴입어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그 할아버지와 버스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좋으신 분 같았는데… 아쉽다 .. ’

캐나다 유학 시절의 시작은
눈물이 날 만큼 외롭고 추운 시간이었습니다.

외딴 캐나다 시골에서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정말 공부만 했어요.

하지만 회화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문법을 공부하고, 아무리 영어를 달달 외워도
막상 말을 해볼 상대가 없는 저에게 영어회화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영어는 ‘혼자’만 해서는 절대 늘 수 없다는 걸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인생을 바꾸는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운 유학생활, 내가 꿈꾸던
“화려하고 유창하게 영어하는 모습”이 점점 무너져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미친 척하고 혼자 캐나다 키치너 시골 동네에 있는 아무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혹시라도 누군가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죠. 같이 온 사람도 없이 맥주만 붙잡고 멀뚱히 앉아있는
동양인 여자아이가 안쓰러웠던 건지, 궁금했던 건지,

Naomi라는 바텐더 친구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Name tag 에 제 영어 이름은 ‘Nami’와 이름이 비슷해서 반가웠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한 명이 되었답니다.

저는 Naomi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같이 웃고 싶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제 진짜 모습을 영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그 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미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영어로 중얼거리고, 거울을 보며 혼자 연기 연습을 하고, 영화 대본을 뽑아 따라 읽고,
혼자 역할극을 하고, 요가 액티비티, 토론 동아리, 모임, 파티까지
원어민이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발 벗고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까요.

틀리는 것도, 버벅거리는 것도, 영어를 배우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부딪히고, 울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며
저는 토론토의 승무원학과를 졸업했고,
외국 항공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교포인 줄 알았다는 소리까지 매번 듣게 됩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 역시 영어를 못했던 사람이기에 학생분들이 어떤 부분에서 막히고,
왜 두렵고, 왜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의 영어 수업 방식과는 다르게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틀에 박힌 문법만 외우는 영어가 아니라,

단기간 자격증을 위해
억지로 버텨내는 영어가 아니라,

누군가와 웃고, 실수하고, 공감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며 배우는 영어.

제 친구 Naomi가 처음으로 제 인생에 따뜻하게 스며들어
영어라는 꽃을 피울 수 있게 도와준 것처럼,

저 역시 학생분들의 삶 속에
그런 역할을 하는 최고의, 가장 든든한 supporter 가 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친구처럼.

저는 영어는 그런 언어여 한다고 믿습니다.

처음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에 탔던 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엄마, 아빠 곁을 떠나 18살의 어린 나이로 혼자 타는 비행기였어요.

외항사 비행기 안, 주변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모두 낯설기만 했고
벌써부터 두렵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승무원이 제게 말을 걸었어요.

“Do you need any drinks?”

그 짧고 간단한 한 문장조차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영어도 못하는 내가 낯선 나라에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괜한 희망을 품고 온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에 도착하고 일주일 쯤 지났을까요?  버스 정류장에서 한 백인 할아버지께서
저를 보며 웃으시며 말씀하셨어요.

“It’s…….fr…..z….c…, isn’t it?” 

무슨 말씀인지 몰라서 저는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죠.

할아버지는 제가 영어를 못한다는 걸 눈치채셨는지 인자하게 웃으시며 또박또박 다시 말씀하셨어요.

“Bundle up more, sweetheart.”

그때는 스펠링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휴대폰 메모장에 들리는 발음 그대로 적어두었답니다.

“번들럽 모어”

그리고 며칠 뒤, 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Freezing to death : 죽을 만큼 추워

Bundle up more : 더 따뜻하게 껴입어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영어를 잘했다면 그 할아버지와 버스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좋으신 분 같았는데… 아쉽다 .. ’

캐나다 유학 시절의 시작은
눈물이 날 만큼 외롭고 추운 시간이었습니다.

외딴 캐나다 시골에서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했습니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정말 공부만 했어요.

하지만 회화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문법을 공부하고, 아무리 영어를 달달 외워도
막상 말을 해볼 상대가 없는 저에게 영어회화 실력은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영어는 ‘혼자’만 해서는 절대 늘 수 없다는 걸요.

그러던 어느 날, 제 인생을 바꾸는 특별한 일이 생겼습니다.

친구 한 명 없는 외로운 유학생활, 내가 꿈꾸던
“화려하고 유창하게 영어하는 모습”이 점점 무너져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저는 미친 척하고 캐나다 키치너 시골 동네에 있는 아무 술집에 들어갔습니다.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혹시라도 누군가 제게 말을 걸어주지 않을까 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죠. 같이 온 사람도 없이 맥주만 붙잡고 멀뚱히 앉아있는
동양인 여자아이가 안쓰러웠던 건지, 궁금했던 건지,

Naomi라는 바텐더 친구가
먼저 제게 말을 걸어주었습니다. Name tag 에 제 영어 이름은 ‘Nami’와 이름이 비슷해서 반가웠죠. 

그리고 놀랍게도, 그 친구는 지금까지도
제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한 명이 되었답니다.

저는 Naomi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같이 웃고 싶었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고, 제 진짜 모습을 영어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그 벽이 너무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정말 미친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영어로 중얼거리고, 거울을 보며 혼자 연기 연습을 하고, 영화 대본을 뽑아 따라 읽고,
혼자 역할극을 하고, 요가 액티비티, 토론 동아리, 모임, 파티까지
원어민이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발 벗고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니까요.

틀리는 것도, 버벅거리는 것도, 영어를 배우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부딪히고, 울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며
저는 토론토의 승무원학과를 졸업했고,
외국 항공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뒤 만나는 사람마다 교포인 줄 알았다는 소리까지 매번 듣게 됩니다.

저는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 역시 영어를 못했던 사람이기에 학생분들이 어떤 부분에서 막히고,
왜 두렵고, 왜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저는 기존의 영어 수업 방식과는 다르게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틀에 박힌 문법만 외우는 영어가 아니라,

단기간 자격증을 위해
억지로 버텨내는 영어가 아니라,

누군가와 웃고, 실수하고, 공감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며 배우는 영어.

제 친구 Naomi가 처음으로 제 인생에 따뜻하게 스며들어
영어라는 꽃을 피울 수 있게 도와준 것처럼,

저 역시 학생분들의 삶 속에
그런 역할을 하는 최고의, 가장 든든한 supporter 가 되고 싶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친구처럼.

저는 영어는 그런 언어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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